풍수로 보는 전북 부흥의 길<35> ‘마을 옛이름’은 전북을 전북답게 할 소중한 자산
- 승인 2022.07.28 15:44
30년 전 유학시절, 박사논문 제출 뒤 한가한 마음으로 아내와 독일 남부 친구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완행열차’를 타고 갔다. 정차하는 역마다 역이름에 ‘-heim(하임)’이란 지명이 많이 띄었다. heim(하임)은 우리말로 골[洞]이나 실[谷]이란 뜻이다. 예컨대 Berg(산)와 heim이 합성된 Bergheim(베르크하임)은 우리말로 ‘산이 있는 마을’이란 뜻의 ‘뫼골’이다.
지명은 그 땅의 생김새와 특성을 표현한 것이 많다. 풍수학인이 땅을 살필 때 지명을 유심히 살피는 이유이다. 필자의 퇴근길 마지막 10km는 임실 강진에서 순창 동계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이용한다. 강진면 갈담을 지나 남쪽으로 고개를 넘어서부터 사곡(沙谷)→가곡(佳谷)→천담(川潭)→원치(遠峙)→어치(於峙)→오동(烏洞)을 지난다. 사곡은 본디 모라실, 가곡은 가실, 천담은 내인, 원치는 멀터, 어치는 느재, 오동은 먹굴이었다.
순수우리말 모라실은 무슨 뜻일까? 우리 말 ‘ᄆᆞᆯ’은 으뜸이란 뜻이다. 이것이 말·마리·마라·모라 등으로 분화한다. ‘실’은 골짜기[谷]나 골[洞]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앞에서 소개한 독일의 ‘heim’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모라실은 큰 마을이란 뜻이다. 그것이 한자로 바뀌면서 모래마을[沙谷]이 되었다. ‘큰마을’이 ‘모래가 많은 마을’로 바뀌었다. ‘가곡’은 영화 ‘이장과 군수’의 촬영 무대가 된 곳이다. 가실은 무슨 뜻일까? 우리말 ‘ᄀᆞᆯ’은 가장자리 혹은 산을 뜻한다. 실제 이곳을 가보면 산골마을[山谷]이다. 그런데 지금 가곡[佳谷], 즉 아름다운 골로 이름이 바뀌었다.
천담(川潭)은 이전에 ‘내인’이라 ‘내안’이라고도 하였다. 하회마을처럼 섬진강이란 천[내·川]의 안쪽이란 뜻의 ‘내안’이 ‘내인’으로 바뀌었다. 느재는 무슨 뜻일까? ‘느’는 우리말 ‘ᄂᆞᆯ’의 변화이다. 넓다[廣]라는 뜻인데, ᄂᆞᆯ은 지방에 따라 ‘늘’, ‘누루’, 놀(노루) 등으로 달리 불리고 때로는 자음탈락이 된다. 따라서 느재는 ᄂᆞᆯ재 혹은 늘재가 그 어원이며, 재는 고개를 뜻한다. 즉 ‘느재’라는 큰 고개를 말한다. 그 밖의 한자 이름들도 우리말이 한자로 변형·왜곡되었다. 일제가 토지대장 정리하면서 억지 한자로 바꾼 것이다.
최근 퇴근길에 새롭게 바뀐 두 지명 때문에 부아가 치민다. 하나는 “용궐산”이란 지명과 “장군(將軍)목 유원지” 안내판이다. 용궐산의 본래 이름은 용골산이다. 예부터 ‘용골산’이었다. 용이 승천하려는 강한 산의 형상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앞에서 소개한 ‘천담(川潭: 내·川이 만든 연못)’과 용골산 사이에 큰 소[沼]가 있었다. 섬진강댐이 생기면서 수량 부족으로 사라졌다. 용소[龍沼], 즉 용의 본래 집이었다. 그런데 용골산을 용궐산으로 순창군청이 바꾸었다. ‘용의 대궐[龍闕]’이란 뜻이란다. 용은 땅에서 살지 않는다. 용은 물에서 하늘로 승천함이 본래 목적이다. 그런데 용을 하찮은 ‘땅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또 하나 전북의 유명유원지가 된 “장군(將軍)목”의 본래 이름은 ‘장구목’이다. ‘목’은 ‘길목’, ‘골목’ 등에서 볼 수 있든 갑자기 좁아지는 길의 부분을 말한다. 노루목[獐項·장항]은 노루 목과 같은 마을 이름이다. ‘장구목’ 마을에서 용골산 북동쪽으로 작은 고개가 있다.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아 거의 사라진 길이다. 그곳에서 보면 장구의 가운데 움푹진 모습을 연상한다. ‘장구목’의 본래 뜻이다. 그런데 순창군청은 이를 “장군(將軍)목”으로 바꾸었다. 일제 강점기도 아닌 21세기 관청의 무지한 횡포이다. 왜 “목”은 한자로 표기하지 않았을까? 전북 도처의 왜곡된 지명을 반정(反正)시키는 것이 전북을 전북다움으로 만들 수 있다. 군수도 바뀐 만큼 ‘용궐산’과 ‘장군목’도 본디 이름으로 되돌려주기를 소망한다.
글 = 김두규 우석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출처 : 전북도민일보(http://www.do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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